독일 언론은 왜 메르켈 총리 건강 이상설을 놓고 알권리보단 프라이버시를 존중했나

올해를 마지막으로 16년간 재임해온 독일 총리에서 물러날 예정인 앙겔라 메르켈은 언론들이 제목으로 뽑을만한 말을 많이 하지 않은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될 수 있는 대로 정제되고 건조한 표현을 선호하는 그는 트럼프나 푸틴 같은 지도자들과는 반대 시점에 서 있다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메르켈 총리에 대해서는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편이다. 몇 년 전 반대 여론에도 독일 헌법 가치를 강조하며 난민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장면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동독 출신 정치인이라는 것 외에 많은 걸 아는 건 아니다.

그를 다룬 책 '메르켈 리더십'을 보니 메르켈 총리는 물리학자 출신에 온건한 페미니스트이고, 프라이버시를 대단히 중시한다. 그의 개인적인 생활은 미디어에 잘 보도가 되지 않을 뿐 더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그의 개인 중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국가 지도자의 프라이버시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미국은, 상대적으로 국민들의 알권리 쪽에, 독일을 포함한 유럽은 프라이버시도 나름 존중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 책에 있길래 관련 내용을 공유해 본다. 메르켈 총리가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니냐? 고 볼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독일 언론들은 총리가 하는 일에 결정적인 영향이 없다는 이유로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는 내용이다.

그해 여름, 끈질기게 덮치는 스트레스가 결국 메르켈의 발목을 잡았다. 그의 몸이 자신의 생각을 배신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가 공식 석상에서 몸을 떠는 모습이 열흘 사이에 두 번이나 목격됐다. 그는 몸이 떨리는 것을 막으려고 두 팔을 붙잡았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로디미르 젤렌스키를 환영하는 예식을 거행하는 도중에 군악대가 독일과 우크라이나의 국가를 연주할 때 총리는 온몸이 떨리는 걸 주체할 수 없는 듯 보였다. 독일인들이 메르켈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 중 하나가 강건한 체력이었다. 베이징에서 날아온 이후에도 곧바로 집무실로 향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들의 강철 총리에게 드러나지 않은 건강 문제가 있는 걸까? 여러 위기가 덮친 이 계정 동안 일부 관측자들은 그가 일으킨 경련을 병약해진 징조로 해석했다. 보좌관들은 어머님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

"간단하게 말하고 싶어요. 여러분은 저를 꽤 오랫동안 아셨고 제가 임기를 완료할 수 있다는 걸 잘 아시죠" 메르켈은 독일 언론에 말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저 역시 제 건강에 관심을 가져요. 제 정치 경력이 2021년에 끝날 것이기 때문에 특히 더 그렇죠. 저는 이 경력이 끝난 뒤에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요." 메르켈은 간략하고 대단히 인간적인 설명으로 자신의 신체가 필생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적합한지 여부를 놓고 벌어진 논란을 일축했다.

미국의 기준에서 보면 총리의 건강과 관련한 사실을 밝혀 내기를 주저하는 독일 언론의 모습은 놀라워 보인다. "우리 언론 협회는 회의를 열었습니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칼럼니스트 아냐 자우러브레이는 말했다. "우리는 총리의 건강이 직무 수행을 막지 않는 한 그 문제를 취재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명백히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총리의 개인적인 문제로 봅니다." 이 불안정한 신세계에서 총리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겠다는 언론의 이 집단적인 결정은 참으로 진기해 보인다.

한국에서도 알권리라는 이름으로 정치인을 포함한 인플루언서들 사생활에 대한 보도들이 쏟아진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기사들이 적지 않다. 알권리는 그냥 거룩한 명분이고, 실제로는 사익 추구를 위한 행위로 비치는 기사들도 많다.

"명백히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총리의 건강에 대한 취재를 하지 않기로 한 독일 언론들의 행보는 메르켈 리더십 저자이자 ABC뉴스 저널리스트인 케이티 마튼도 참으로 진기하다고 했지만 한국에서도 '어떻게 저럴 수가' 하는 반응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일과 프라이버시의 관련성을 따져, 일에 문제가 없으니 프라이버시는 존중하기로 한 것은 한국 미디어 환경에서는 적어도 당분간은 보기 어려울 장면이다.

SNS와 유튜브 등 디지털 환경이 사람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프라이버시의 공유도 퍼지고 있다.

틈날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도날드 트럼프나 엘론 머스크도 있지만 나름 외부에 떨어진 공간에서 프라이버시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앙겔라 메르켈 같은 정치인도 있다. 

푸틴이나 트럼프 같이 상대하기 만만치 않은 이들이 버틴 국제 정치판에서 앙겔라 메르켈이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자기만의 공간을 유지하며 절제 속에 생각의 깊이를 키워왔기 때문이 아닐는지….

자기 말을 하는 것보다는 남의 말을 듣는 것을 중요시하는 앙겔라 메르켈의 은퇴 후 꿈은 잊혀지는 것이다. 이 세상의 A급 관종들에게 메르켈 리더십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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