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의 몰락 그리고 '일본 전자'의 몰락

캐논의 짐벌 카메라 특허에 대한 소고

 

얼마 전 캐논이 재미난 특허를 하나 냈다.

이름하여 짐벌형 디지털 카메라 시스템에 대한 특허다. 특허 내용을 살펴보면,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시 흔들림을 방지하는 짐벌 시스템에 카메라를 장착하는 것이 아닌 짐벌 시스템 자체에 이미지 센서와 렌즈를 내장한 방식이다. 짐벌과 DSLR 카메라의 결합이랄까 ... 

무엇보다 DSLR 카메라의 가장 큰 특징인 교환렌즈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짐벌에 렌즈를 갈아 끼우는 것 만으로 다양한 화각으로 피사체를 촬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짐벌의 안정성, 휴대성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면서 DSLR 카메라의 장점을 결합한 아이디어다.

캐논의 짐벌형 렌즈교환식 카메라 특허 [사진: 미국 특허청]

굉장히 획기적이고 실용적인 아이디어이긴 한데 ... 문제는 이게 너무 늦게 나온 것이다. 사실 이정도 아이디어라면 2010년대 초반에 특허가 나오고 늦어도 2014~2015년에는 제품이 나왔어야 했다. 2021년 세계는 이미 디지털 카메라의 시대가 저물었다. 스마트폰 한 대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세상이 이미 와 버린지 오래다.

스마트폰이 출현하고 이른바 '폰카'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전통적인 카메라 메이커의 몰락은 예견된 바다. 그러나 불행히도 카메라 시장의 양대 산맥, 캐논과 니콘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니콘은 지난해 직원 20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코로나19가 닥친 지난 2020년 실적은 창사 이래 최악의 수준이다. 카메라 판매량은 전년 대비 64% 감소했다. 시장은 10년만에 1/10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카메라뿐만 아니라 캐시 카우 역할을 하던 반도체 노광 장비 시장에서도 네덜란드 ASML에게 시장을 내주고 퇴출 위기다. 믿었던 인텔이 지지부진하는 바람에 니콘의 반도체 사업도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됐다. 100년 역사를 지닌 전통 광학시장의 터줏대감도 도저히 버틸 수가 없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마지막 전성기를 누리던 2007년, 4030엔 수준이던 니콘 주가는 현재 770엔 수준으로 폭락했다. 이마저도 계속 하락세다.

캐논도 휘청이긴 마찬가지다. 2020년 1분기 캐논의 디지털 카메라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4% 감소한 1517억엔에 그쳤다. 영업이익은 81%가 줄어 9억엔으로 적자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2007년, 7350엔에 달하던 캐논 주가도 2100엔대로 떨어졌다. 그나마 니콘에 비해 반도체, 사무기기, 의료장비 등 사업다각화가 이뤄진 탓에 충격이 덜한 수준이다. 캐논 역시 디지털 카메라 사업을 대폭 축소할 생각을 하고 있다.

카메라 기능을 강조한 삼성 갤럭시 S21 시리즈

1억화소급 카메라와 10배 광학줌, 8K 동영상 촬영 기능이 이제 놀랍지 않은 시대가 되어버렸다. DSLR의 마지막 장점이라 불리는 화질과 다이내믹 레인지, 배경 흐림 효과도 AI의 도움을 받아 소프트웨어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50만원짜리 구글 픽셀폰이 200만원짜리 DSLR카메라와 100만원짜리 줌렌즈를 밀어내 버린 세상이다.

캐논과 니콘의 몰락은 그저 광학 전문 기업의 몰락을 의미하진 않는다. 한 분야에 몰두해 끝판왕을 만들고야 마는 소위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일본 전자 산업의 몰락을 의미한다.

'집중'보다 '속도'가 우선하는 시대가 왔다.
어쩌면 '빨리빨리'에 익숙한 우리에게 더 익숙한 시대가 아닐까도 싶다. 때론 빨리 사라져버려서 곤란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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