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40년 전 이병철과 스티브 잡스의 역사적 만남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해외 국가들 중에서는 인도나 일본을 좋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은 그닥 좋아하지도 않았고 한국을 찾은 적도 없는줄 알았더니 80년대초 사업차 한국을 방문해, 이병철 당시 삼성전자 회장을 만났다. 스티브 잡스와 이병철 회장이 만난게 왠지 상상이 잘 안가는데, 엄연한 사실이다.

외신 저널리스트 제프리 케인이 쓴 삼성라이징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83년에 한국에 와서 이병철 회장을 만나 자사 제품에 쓸 부품 공급에 대해 논의했다. 딜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나름 진지한 협의가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스티브 잡스가 찾고 있던 부품은 PC가 아니었다. 태블릿이었다. 83년에 이미 잡스는 태블릿을 만들려고 돌아다녔던 셈이다.

1983년 11월 28세의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 도착했다. 많은 공장 굴뚝들과 삼성 유니폼을 입고 배지를 단 공장 근로자들, 그리고 회장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직원들이 그를 맞이했다.

잡스는 낭만이나 모험을 기대하며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그런 목적으로는 이미 일본과 인도를 여행했었다. 그는 과감하고 시대를 앞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바로 태블릿 컴퓨터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의 벤처 기업인 애플컴퓨터에서 아이패드를 출시하기 27년 전이었다.

"스티브는 미래가 모바일의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그는 다이나북을 만들고자 했어요." 그 당시 잡스와 동행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삼성을 방문했던 동료인 제이 엘리엇이 말했다. "그는 메모리와 디스플레이를 공급해줄 제조 업체가 필요했어요."

회의론자들은 제록스에서 고안한 다이나북 태블릿 콘셉트를 현실과 동떨어진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라고 폄하했다. 그것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온 한 소품과 유사했다. 그런 제품은 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되어 출시하기 힘들고 수요도 너무 적어 틈새 시장에 그칠 것이라고 여겨졌다. 10년 전에 제록스의 PRAC 연구소는 전 연령대의 어린이들을 위한 PC 원형 모델을 개발했지만 당시의 기술력이 너무 원시적인 수준이었던 탓에 실제로 제작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잡스는 그 정도로 단념하지 않았다. 그는 미래의 PC와 전화기는 휴대성을 갖춰야 한다고 믿었다. 만약 애플이 부단한 노력으로 그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이미 PC 분야에서 애플을 몰아내기 위해 맹공격을 퍼붓고 있던 초거대 기술 기업인 IBM이 그를 집어삼킬 터였다. 과연 그는 어디에서 필요한 부품을 얻을 수 있을까?

잡스는 일본을 여행했고 그곳에서 소니의 창업주 모리타 아키오를 만났다. 그는 소니의 경영 방식과 매끈한 디자인 기풍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엘리엇에 따르면 잡스는 일본의 이웃인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산업이 어설프고 낙후되어 있지만 장래성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느꼈다.

잡스는 실제로 왔다. 이병철 회장을 만나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는 말은 하는 쪽은 잡스였고 듣는 쪽은 이 회장이었다. 

잡스는 지저분한 산업 중심지 서울에 도착했다. 엄숙한 태도로 인사하는 삼성 직원들이 그를 맞이해주었다. 잡스에게 그 당시 삼성은 GE에 납품하는 싸구려 전자레인지를 제조하는 무명의 가족 기업에 불과했다. 삼성은 스스로 삼성전자라고 불렀지만 서양인들 사이에서 이 회사는 삼석: 수준 이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잡스가 삼성 사옥 안으로 들어갔을 때 이병철이 직접 나와 그를 맞이했다. 그를 커다란 고급 의자들과 한국식 전통 비품들이 구비된 회의실로 안내한 이병철은 자신의 과감한 계획을 공개했다. 그는 당시에 미국과 일본의 경쟁 업체들보다 한세대 뒤처져 있던 삼성전자를 세계 최대의 컴퓨터 칩 공급 업체로 자리 잡게 할 생각이었다. PC 혁명이 진행되던 상황에서 이 회장은 삼성이 그 혁명의 엔진이자 혁명의 운전자가 되어 국가와 회사에 국제적인 위상과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 주기를 기대했다.

이병철은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있으며, 자신이 삼성의 활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잡스는 메모리칩이 필요했다. 삼성은 이제 겨우 메모리 칩 제조의 초기 단계로 진입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계에서 부터 삼성은 애플에 디스플레이 일부와 애플 PC에 필요한 부품들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서예와 관상술을 좋아하는 연로한 유생인 이병철은 말 많고 활달하며 이따금 불쾌한 언행을 일삼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젊은이와 잘 어울렸다.

스티브는 자랑하기를 좋아했어요. 또 말이 엄청 많기도 했고요. 좀처럼 말을 멈추지 않았죠." 엘리엇이 말했다.

잡스는 이듬해 출시될 예정인 자신의 발명품 매킨토시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이병철은 자신이 삼성에 대해 구상하고 있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거 좋을 거 같네요." 엘리엇에 따르면 잡스가 한가지 아이디어를 듣고 소리쳤다. "아뇨, 그건 안될 거 같아요!" 라는 말이 뒤따랐다. 한국에서 28세의 젊은이가 나이 든 어른, 특히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의 회장에게 마구 재깔이는 행동은 엄청난 모욕으로 간주되며 누구라도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하지만 이병철은 잡스의 총명함을 인식하고 그의 결례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그게 스티브 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가 두 팔을 벌려 껴안고 손을 흔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죠." 엘리엇이 회상했다. "제가 나중에 그에게 자네 지금 수백만 달러 짜리 아이디어를 공짜로 줬어! 라고 말했어요. 그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죠"

잡스가 떠난 후에 삼성의 창업주는 특유의 근엄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신중하게 고른 몇 개의 단어를 사용해 비서들에게 단언했다. "잡스는 IBM과 맞설 수 있는 인물이네"

2년 후 잡스는 CEO 존 스컬리와의 권력투쟁에서 대패하고 애플의 이사회에서 해고되었다. 초기 형태의 태블릿은 적어도 한동안은 역사의 휴지통에 버려졌고 애플과 삼성의 제휴에 관한 계획은 모두 무산되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훨씬 지난 후에 부품 공급 업체 삼성과 컴퓨터 제조 회사 애플은 큰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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