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비숙련 노동자들의 삶을 고달프게 하는 경제학의 진실

자유무역의 시대는 가고 보호무역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일까? 영국의 브렉시트, 트럼프의 등장 이후 벌어진 미중 무역 전쟁 등을 보면 글로벌 경제에서 보호무역의 색깔이 강해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영국는 유로존에 가입해 힘들어졌다며 마이웨이를 선언했고, 트럼프도 중국 때문에 미국 일자리가 위협받았음을 앞세워 중국에 대한 무역 전쟁을 정당화하고 있다. 중국을 압박하면 고단한 미국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심어주면서...

하지만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누가 성장해 우리가 피해를 봤다'는 식의 사고는 기업에선 먹혀들지 몰라도 국가간 무역에선 들어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폴 크루그먼은 1996년에 쓴 책 '경제학의 진실'을 통해 국가간 무역을 제로섬 게임으로 몰고 가는 전문가들이 인기를 얻고 있지만 실제로 무역이 특정 국가 경제의 침체에 큰 타격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미국을 예로 많이 다루는 이 책은 20여년전에 쓰이기는 했으나, 경제학의 이런저런 개념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지금 봐도 철지난 얘기라는 느낌을 들지 않는다. 보호무역의 함성소리가 커지는 요즘이라, 오히려 와닿는 부분들이 많다.

경쟁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깊은 생각 없이 그 말을 쓴다. 그들은 국가와 기업을 비슷하게 보는 것을 분명히 합리적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세계 시장에서 미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 것이 제너럴 모터스사가 북미 미니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었는지 묻는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국가의 경쟁력을 논하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을 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다.

국가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이 언제나 흥미롭다. 그러나 일본의 성장이 미국을 위상을 감소시킨다는 주장은 미국의 생활 수준을 떨어뜨린다고 말하는 것과 아주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경쟁력이라는 용어가 주장하는 것은 바로 후자다.

경쟁력이라는 말이 널리 확산된 것은 이유가 있다.경쟁이라는 이미지는 흥미를 자아내고 스릴은 인기를 몰고 온다.  또 미국의 경제난이 전적으로 국제 경쟁의 실패에 기인한다는 생각은 다소 역설적이지만 이 경제난의 해결을 용이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그러나 어느나라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지 못한것처럼 보이거나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외국인들에게 고임의 일자리와 고부가가치 부문을 빼앗기는 위험을 감수하기 보다는 차라리 국경을 폐쇄하는 쪽이 더 낫다는 것이 경쟁적 진단의 필연적인 주장이다.

물론 기업의 세계에서는 경쟁력이 분명한 의미를 지닌다. 경쟁력이 없는 회사, 즉 경쟁자 만큼 좋은 상품을 제공하지 못하고 원가를 낮출 수 없는 회사는 시장 점유율을 잃게 되고 결국은 사업에서 물러나야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국가는 기업과 매우 다르다. 실제로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국가간의 무역은 기업간의 경쟁과는 아주 다르기 떄문에 경쟁력이라는 단어를 국가에 적용할 경우 오해의 소지가 많아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20년전에 나온 책이라는걸 빼고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추진하는 정책들을 향한 발언이라고 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다. 자국 경제가 안좋은 책임을 외국으로 돌리는 것은 근거없는 헛발질이라는 폴 크루그먼의 주장은 계속된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들의 급속한 수출 증가를 감안하면 요소 가격 균등화가 미국의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간의 임금 격차를 확대시킨 주요 이유라는 생각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실은 그렇지가 않은 듯 하다. 우리의 발견에 따르면 제조업의 감퇴와  실질 소득 증가의 둔화처럼 임금격차의 확대도 확실히 국내 원인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제조업의 GDP 비중이 감소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구입하는 상품이 전보다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고용이 감소하는 이유는 기업들이 인력을 기계로 대치하고 그들이 보유한 인력의 효율을 높이기 때문이다. 임금이 정체된 이유는 생산성 향상률이 경제 전반에 걸쳐 둔화되었기 때문이며 특히 기술 수준이 낮은 노동자들이 고통 받는 이유는 첨단 기술의 경제가 점점더 그들의 서비스를 요구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문제에서 세계 각 국가와의 교역에서 미국이 담당한 역할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제3세계 경쟁이 미치는 경제적 영향에 대한 공포심은 사실 거의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저임금 국가들의 경제 성장은 이론상 고임금 국가들의 1인당 소득을 줄일 수도 있지만 그게 못잖게 그것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 그 영향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많은 정책 입안가들과 탁상공론가들은 우리가 지금 전통적으로 자본의 이동성이 엄청나게 큰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이러한 이동성 때문에 모든 것이 변화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자본의 이동성은 그처럼 큰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자본의 이동이 가져온 변화는 적어도 선진국에 관한한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미국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경쟁자보다 생산성이 뒤지는 회사는 시장을 잃고 종업원을 해고하지 않을 수 없고, 결국 문을 닫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국가에서도 발생하지 않을까? 대답은 아니오다. 국제경쟁으로 인해 국가가 사업을 중단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에는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작용한다.

비록 정부 보조와 시장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이 몇몇 산업의 국제경쟁 결과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틀림 없다 해도 그런 조치가 실망적인 미국의 경제 실적을 설명하는 주요 요인이 될수는 없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 생산의 대부분은 국제적으로 교역되지 않는다. 1990년의 경우 GNP에서 수출과 수입이 차지한 비중은 각각 13%와 12.3%에 불과했다.

미국의 경쟁력을 우려하는 시각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무역 상대국을 따라잡지 못하는 경제는 심각한 손실, 즉 치유할 수 없는 무역 적자와 대규모 실업, 그리고 어쩌면 경제붕괴까지 겪에 되리라는 것이 일반의 우려다. 이런 우려는 잘못이다. 이론은 물론이고 실제적인 측면에서도 생산성이뒤지는 국가들도 교역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역을 하게 하는 것은 절대 우위가 아니라 비교우위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 때문이 아니라면 특정 국가의 경제가 안좋아지는 이유는 뭘까? 폴 크루먼은 대부분의 이유는 내부에 있다는 입장이다. 생산성이 떨어지니 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이고, 물량 투입만 있고 실질적인 효율성이 부족하니, 경제가 예전만큼 성장이 안된다는 것이다. 무역 때문에 이렇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선진국 노동자중 몇만명, 또는 몇십만명이 저임금의 수입품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선진 산업국의 총 노동력은 4억이넘는다. 이들중 3000만명 이상이 실업자다. 그들의 실업에 대한 조사 결과가 거의 한결같이 제3세계와의경쟁에 그 원인이 있었다 해도 아주 미미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기술에 의한 수요 변화가 미국의 소득 불균형 확대의 주요 원인이고, 또 유럽 실업 증가의 원인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결론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제학의 진실을 읽고 그동안 케인즈주의 경제학자 정도로 생각했던 폴 크루그먼에 대해 좀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그가 공부하고 분석한 것에 따르면 국가 경쟁력을 이유로 보호무역을 주장하는건 경제학적으로 말이 안되며, 국가간 자유무역은 모두를 이롭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케인즈주의자가 아니라는 말인가? 그건 아닌것 같다. 

폴 크루그먼은 자유무역을 하더라도 통화 및 재정, 환율 정책에 대해 개별 국가들이 권한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모든 나라들이 똑같은 룰을 따로는 것은 역효과가 클 수 있다.

눈에 띄는 점은 폴 크루그먼은 같은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장하준과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96년에 책이 쓰였음을 감안하면 동남아와 한국을 강타한 경제 위기 전 글로벌하게 주목받는 아시아 신흥 공업 국가들의 잠재력을 오버액션이라고 지적한 셈이다. 

아시아식 국가 주도 및 개발 독재형 자본주의가 서구식 자유 시장을 대체할 패러다임이라는 일각의 평가에 대해서도 근거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시아 신흥 국가들은 하나를 넣으면 하나가 나오는 양적 성장이지, 효율성이 담보된 질적 성장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1950년대의 소련 처럼 아시아의 신흥 산업국들이 급성장을 이룩한 것은 주로 놀랄만한 자원의 동원 덕분이었다. 이들 국가의 성장에서 급증한 투입이 발휘한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나면 더 이상 말할 거리가 별로 남지 않는다. 높은 성장기에 보여준 소련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의 성장도 효율성의 증가보다는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 요소의 이례적인 투입 증가에 의해 추진되는 것으로 보인다.

무역 의존도가 낮은 미국과 달리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한국 상황에도 폴 크루그먼이 경제학의 진실에서 강조한 내용이 먹혀들 수 있을까? 책에서 폴 크루그먼이 자신의 주장은 보편적인 경제학 논리임을 강조한 것을 감안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큰틀에서 미국과 한국 모두에 적용될 수 있을거 같기는 한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아무튼 경제학의 진실은 폴 크루구먼의 또 다른 저서인 미래를 말하다나 지리경제학과 비교하면 내용도 많은 이들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뒤집는 도발적인 표현들도 많이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경제학책 치고는 읽는 재미가 있다. 폴 크루그먼의 주장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통하는지 살펴보고 나서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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