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ICBM 제어에 40년 묵은 플로피디스크를 사용한 이유

며칠 전, 온라인 매체 기즈모도에 재미있는 기사가 나왔다.

미국이 그동안 방치하다 시피하던 핵전력을 재점검하면서 노후된 시설과 무기를 새롭게 교체하는 중인데 40년 이상 사용해왔던 플로피디스크(FDD)의 사용을 드디어 중지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잘못 읽은 줄 알았다.
요즘 많이 쓰는 솔리드 디스크 드라이브(SSD)도 아니고, 아직도 많이 쓰는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HDD)도 아닌, 낭창낭창한 종이 커버를 두른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FDD)를 사용한다. 이걸 대체 언제 적에 썼더라? 개인적으로도 안 쓴지 20년은 넘은 것 같은데 ... 아무튼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런 고대 유물을 쓰는 이유가 있다.

미공군의 미니트맨III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제어에는 1970년대 만들어진 IBM 시리즈1 미니 컴퓨터가 쓰이는데 당연히 저장매체는 당시 기준으로 많이 쓰이던 약 230KB(MB가 아니다) 용량의 8인치 FDD다.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니 IP 주소도 없고 해킹의 위험도 없다. 네트워크에 직접 연결되지 않은 독립 장비다 보니 보안성 하나는 탁월했던 것. 게다가 미사일 발사통제라는 목적을 위해서만 쓰이다 보니 업그레이드할 필요성도 없었다.

이렇게 탁월한(?) 장비가 결국 끝을 맺게 된 것은 결국 돈 때문이다. 
40년 이상된 노후 장비다 보니 고장이 나도 수리가 힘들었고 유지보수비용만 매년 610억달러(약 72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소요됐다. 결국 미공군과 회계감사원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2017년부터 시작해 2020년까지 ICBM 발사통제 시스템을 모두 업그레이드하기로 결정한 것. 핵미사일 발사코드를 실행하는 이 무시무시한 8인치 플로피디스크도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8인치 플로피디스크(왼쪽), 5.25인치 플로피디스크(가운데), 3.5인치 플로피디스크(오른쪽) / 사진=oldcomputers.ne

그러고 보면 군용이나 항공 등 특수 목적으로 오래된 컴퓨터 시스템을 사용하는 예가 적지 않다. 독일의 토네이도 전폭기에는 항법 컴퓨터용 저장장치로 카세트테이프가 사용되며, 구 소련의 미그-25 전투기 레이더에는 진공관이 쓰였다. 우리 군의 K1 전차 사격통제장치에도 최신 윈도우 OS나 특수한 RTOS가 아닌 80년대 쓰던 DOS 운영체제가 사용된다. 나사의 화성 탐사위성에는 20년 전 쓰이던 16비트 CPU가 장착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오래된 동네 당구장 카운터에 8비트 애플II 기반의 요금 계산용 컴퓨터가 떡하니 놓여 있는 광경을 아직도 이따금씩 볼 수 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세상이 첨단 기술로 빠르게만 돌아가는 건 아닌 것 같다. 때로는 느려도 충분할 때가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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