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말한다, 셧다운제는 허구다

정부가 단계적으로 완화하겠다고는 했지만 한국은 아직 청소년들이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는 제도적으로 게임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는 나라다. 

정부는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을 막고 수면권을 보장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셧다운제를 들고 나왔지만 실제 현실에서 셧다운제는 많은 이들에게 비현실적이고 때로는 황당무개한 존재로 비춰지고 있다. 폐지론이 나온지 오래됐음에도 셧다운제가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것은 학부모들이 이를 찬성하기 때문이라는 시선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읽은 책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는 셧다운제가 갖는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다시 한번 체감하는 계기가 됐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는 소설가 조정래씨와 그의 손자 조재면 군이 같은 주제를 놓고 쓴 논술을 모은 책인데,  2018년 출간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조재면군이 셧다운제를 비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그는 책에서 구조적으로 한국의 청소년들은 게임 말고 여가를 즐길만한 게 딱히 없는 상황에 놓여 있으며, 셧다운제에 내걸린 명분도 게임에만 편파적으로 적용된 것이며, 제도의 효과 또한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우선 그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게임말고 특별히 할게 없는 현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왜 청소년들이 게임을 선택하고 어느덧 이것이 청소년들에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혔는지는 현 대한민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모든 삶의 목적이 대학으로 향하는 입시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많은 억압과 제약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 많은 억압속에서 어떤 문화를 선택할 때 받는 것이 바로 시간적, 공간적, 경제적 제약이다.

우선 시간적 제약이란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정할 수 있는 일명, 자유시간의 제약을 의미한다. 어떤 문화 생활을 즐기려면 기본적으로 그걸 소화시킬 수 있는 자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학교, 학원, 과외 등 여러 학업적인 요인들에 대부분의 시간을 빼앗기는 청소년들에게 자유시간은 극히 제한적으로 주어진다. 결국 이렇게 적은 시간, 그리고 밤시간대에 주어지는 그들의 자유로운 시간은 절대적으로 자유롭지 못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문화 활동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때로는 이마저도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 다음으로 공간적 제약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의 한정성을 의미한다. 모든 문화는 그 문화를 향유하기 위한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문제는 청소년들이 그러한 공간을 제공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위 어디를 둘러봐도 청소년 문화 시설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 환경이 매우 열악하여 그곳에서 문화를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제약이란, 말 그대로 문화를 즐기는데 필요한 돈의 제약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부모에게 종속되어 있다. 이로 인해서 어떤 결정을 할때도 부모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돈, 생활 등 많은 부분을 부모에게 지원받는다. 이러한 이들에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문화 생활은 불가능할뿐더러 사치인 셈이고, 부모 입장에서도 잘 허락되지 않는다.

이렇게 청소년들은 위의 3가지 장애물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문화 놀의 폭이 극히 제한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 이 장애물들을 치우고 손쉽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 바로 게임인 것이다. 게임은 언제든지 낮과 밤에 상관없이, 짬짬이 즐길수 있고, 공간의 제한이 비교적 적고, 이용할 때 비용 부담도 적다. 즉, 게임은 위 3가지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고 문화적 유희의 기능도 갖춘, 어찌보면 유일무이한 놀이이다.

셧다운제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그 시간을 오전 0시에서 6시로 지정한 것은 청소년이 절제를 하지 못하고 밤새도록 게임하는 것을 방지하여 게임 중독을 막고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명분엔 논리적으로 모순이 있다는 것이 조재면군의 지적이다.

이러한 그럴듯한 명분 속에는 몇가지 오류들이 숨어 있다.  우선 왜 게임 중독을 막는데 그 대상이 청소년 전체냐는 것이다. 게임 중독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셧다운제의 적용 대상이 게임 중독자에게 향해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연령적 대상 제한은 주민번호 도용이라는 문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밤에도 게임을 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은 부모님이나 주위 성인들의 주민번호를 도용하여 청소년 신분을 은폐에 게임을 하게 되었다.

수면권 보장이라는 말도 그럴싸한 명분에 불과하다. 이 말만 보면 결국 셧다운제 시행의 목표는 청소년을 강제로 침대에 눕혀놓고 재우기 위한 것이나 다름 없다. 명분이 수면권의 보장이지 이를 바꿔 말하면 12시 넘으면 잠들도록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말이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셧다운제는 인터넷 강의나 과외 활동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과도한 입시 공부가 청소년들의 수면권을 침해하는 주범임에도 말이다

셧다운제는 빛 좋은 개살구다. 모양새를 보면 청소년 게임을 줄여 올바른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시도 같지만 게임 이외에 어떤 문화를 정착시키려는지에 대한 대안이 없고, 사회 현실은 그대로 내려버려 둔채로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바꾸려는 시도이다.

조정래씨가 살짝 첨삭을 해주기는 했지만 책에 실린 조재면군의 글 대부분은 본인이 직접 쓴 문장들이다. 책을 보면서 고등학생이 이렇게 글을 잘 쓸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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