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 기술의 탄생과 정부의 역할론

혁신에서 정부는 빠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세상을 흔든 혁신의 물꼬를 정부가 터줬던 경우도 많다.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다르파)도 혁신의 역사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정부 기관 중 하나다.

우선 다르파는 세상을 바꾼 인터넷 기술이 세상에 나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르파는 국방 차원에서 죽지 않은 네트워크를 고민한 끝에, 인터넷의 전신인 알파넷을 개발했고, 30년뒤 불어닥칠 인터넷 열풍의 밑돌을 깔았다.

세상을 바꾼 기술이 탄생하는데, 다르파가 기여한게 인터넷 뿐만은 아니다. 자율주행차라는 개념이 틀을 잡는데도 다르파의 공이 컸다. 다르파는 구글이 자율주행차 사업화를 추진하기로 하는 계기도 됐다. 세바스찬 스런, 크리스 엄슨, 레반도스키 등 다르파에 참가했던 개발자와 엔지니어들은 향후 구글 자율주행차 부서에서 키맨으로 맹활약하게 된다.

GM에서 연구 개발 부문을 총괄했고 지금은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산하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웨이모의 고문으로 있는 로렌스 번스가 쓴 책 '오토노미:제2의이동혁명'을 보면 다르파는 그렇게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엘리트 엔지니어들에게 자율주행차를 개발해야겠다는 열정을 불어넣어주는 산파 역할을 했다.  2004년과 2005년, 2007년에 개최한 자율주행차 경진대회가 그것이다. 다르파는 자율주행 기술이 있으면, 이라크전 등 전쟁에서 미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판을 직접 마련하게 됐다. 

책을 보면 여러 사람들이 이 대회에 흥분했는데, 구글 문샷 프로젝트를 전담하는 구글X 조직의 리더 출신인 세바스천 스런도 그중 하나다. 스런이 열여덟살이었던 1986년 그는 절치한 친구 하랄드를 자동차 사고로 잃은 경험이 있었다. 하랄드는 친구가 새로 뽑은 아우디 콰트로에 같이 탔다가 운전대를 잡은 친구가 과속 상태에서 트럭을 들이받으면서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이런 경험이 그가 자율주행에 관심을 갖는데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저자는 자율주행차의 역사에서 다르파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다르파가 주최한 세번의 자율주행 대회 덕에 자율주행차 기술을 대거 발전시켜 나갈 엔지니어와 컴퓨터 과학자들로 구성된 커뮤니티가 생겨났다. 다르파는 특이한 학자나 애호가들이 열곤했던 틈새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며, 이런 프로젝트가 전반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세월이 흐르면 세번의 대회에 대한 다르파의 투자를 이끌어낸 토니 테더의 결정이 놀라운 승수 효과를 냈다고 칭송받을 것이다.

참고로 설명하자면 다르파는 2005년 두번째 챌린지에서 약 980만 달러를 지출한 반면 좀더 규모가 큰 어번 챌린지에는 총 2500만 달러를 지출했다. 다르파가 주최한 대회 덕에 새로운 형태의 운송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명한 지출이었다. 이 투자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 즉, 좀더 안전하고 저렴하고 효율적이면서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수조 달러의 재원을 아낄 수 있는 이동 방식을 개발하는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다르파가 인터넷과 자율주행차 시장에 미친 영향은 혁신에서 정부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책을 보면 자율주행경진대회는 사건 사고도 적지 않았다. 중간중간에 언론으로부터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럼에도 대회는 끝까지 진행됐고 가시적인 성과도 얻어냈다. 대회 자체가 전국적인 이슈가 된 것도 소득이었다.

한국은 어떠한가? 미국이나 한국이나 거기서 거기일 수도 있겠지만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공무원들은 안전 제일을 최고로 친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CDMA를 개발할 때만 해도 정부가 총대를 메는 분위기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정부 정책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듯한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잘된거 같지 않는데, 결과 보고서엔 잘 끝났다고 돼 있는 정책들도 많아 보인다. 

포장은 그럴듯한데 알맹이는 별로 없는 정책도 수두룩하다. 실패는 하다보면 생길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인사평가에서 마이너스 요인일 뿐이다. 변화에 둔감하고 책임을 안지려는 공무원들이 내놓는 정책은 혁신과 제대로 소통할 수 없다. 모든 분야에서 리스크를 떠안을 필요는 없겠지만, 기술과 관련해서만큼은 정부내에 리스크 테이킹이 많이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변화에 둔감하고 책임을 안지는 분위기가 지배하는 곳이었다면 다르파도 큰돈 안들이고 자율주행차라는 큰 판을 만들어 내는 장면은 연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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