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주도 프로그래밍의 세계와 사라진 여성의 역사

실리콘밸리는 그냥 실리콘밸리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블룸버그 테크놀로지와 블룸버그 스튜디오 1.0 앵커이자 총괄 제작자인 에밀리 창이 쓴 브로토피아를 읽고 나니 여성의 눈에 비친 실리콘밸리는 남자들에 의한 남자들을 위한 세계였다.

성비로 본 실리콘밸리의 맨얼굴은 이러하다.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에서 여성은 컴퓨터 관련 전체 종사자의 25%에 불과하고 이는 1991년의 36%에서 10% 이상 감소한 수치다. 심지어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거대 IT기업들에서는 여성 엔지니어의 수가 실망스럽게 그지 없다. 2017년 구글의 전체 직원중에서 여성의 비율이 31%였지만 핵심적인 기술직에서는 간신히 20%에 턱걸이 했다. 페이스북도 사장이 별반 다르지 않다. 전체 직원중 35%가 여성이지만 기술적 여성은 19%에 불과하다. 특히 유색인종의 여성만 놓고보면 통계 수치가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이다.

불행한 진실은 지금 이순간 남성의 목소리가 지배하고 우리 눈앞에 그 결과물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IT 붐 시절에 만들어진 인기 제품들은 여성의 목소리가 거의 배제되었다. 오늘날 어린이 세대가 중독된 폭력적이고 성 차별적인 비디오 게임이 대표적이다. 또한 애플이 대대적으로 광고했던 초기 버전의 건강관리 애플리케이션은 혈중 알코올 농도는 추적할 수있어도 여성의 생리 주기는 관리하지 못한다. 대형 화면을 장착한 스마트폰부터 인공심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남성의 신체에 더욱 적합한 크기로 만들어졌다. 2016년 즈음에 만약 애플의 시리, 삼성의 S보이스, 구글나우 같은 가상비서에게 심장 발작이 왔다고 말했다면 대처 요령과 응급처치 등에 관한 즉각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간당했어라거나 남편한테 맞았어라고 말했다면 매력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무슨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남자들이 실리콘밸리 프로그래밍 생태계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일각에선 여자들보단 남자들이 프로그래밍에 적합하기 때문에 성비의 불균형은 불가피한 결과라는 견해도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컨퍼런스나 칵테일파티 어디라도 좋다. 그런 곳에 가보면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질문을 진지하게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질문에 대한 모범 대답도 듣게 될것이다. 그런 모범 대답을 하도 자주 하다 보니 이제는 능력주의처럼 알쏭달쏭한 암호 같은 용어가 생겼을 정도다. 능력주의라는 말에는 커다란 두가지 함의가 있다. 모두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공평한 경쟁의 장이 존재한다는 것과 남성이 여성과의경쟁에서 이겼으므로 혹은 특별한 유형의 지각을 소유하므로 남성이 명예와 권력을 차지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남녀격차에 대한 책임을 사회나 학교나 부모 혹은 여학생이나 여성 자체에 돌리는 면피성 핑계에 불과하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는 이런 모든 대답은 물론이고 그런 대답에 담겨 있는 사회 통념과 절반의 진실은 철처히 분해해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비단 IT가 우리의 현대 경제에서 중요한 한축을 이루기 때문만은 아니다. 실리콘밸리가 일류의 미래를 형성하는데 주도적이고 지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처음부터 프로그래밍 세계에서 여성들이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컴퓨터 초창기엔 여성들이 오히려 프로그래밍의 진화를 주도했다.

미래를 주도할 것이라는 중대한 IT산업에서 여성을 배척하는 현상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다. 1840년대 에이다 러브레이스라는 총명한 수학자가 아직 발명되지도 않은 컴퓨터에서 사용할 프로그램을 인류 역사상 초초로 작성했다. 그러니까 인류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세기가 흐른 후 제2차 세계대전중에 여성들은 군사적인 목적을 위한 최초 컴퓨팅 장치들을 개발하는 개척자 집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미국 육군도 제2차 세계대전중에 자체적으로 보유한 최초의 컴퓨터를 사용했고 그 컴퓨터 프로그램의 개발자들 역시 여성이었다. 비록 당시는 엔지니어의 길은 여성에게 장려하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고학력 여성들이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 그리 드물지 않았다. 1962년 존 글렌은 미국 역사창 최초로 우주선을 타고 지구 궤도를 비행했다. 그 역사적인 사건 뒤에는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수학자로 일하던 3명의 흑인 여성이 있었고 그들은 우주선의 비행 궤도를 계산하는 일에 참여했다. 아플로 11호를 달에 무사히 안착시키는 궤도를 계산하는 코드를 작성한 팀의 최고 책임자도  마거릿 해밀턴이라는 여성이었다.

1980년 미국에서 전국 평균으로 볼때 남녀 대학생의 비율이 거의 5대5에 이르렀고 오늘날에는 여성 대학 졸업자수가 남성을 앞질렀다. 1970년을 시작으로 법학대학원과 의과대학에서 여학생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마침내는 남여 졸업자수가 동등한 수준까지 되었다.

애플이 매킨토시를 출시한 1984년 기술 산업의 여성 종사자 수가 최고점을 찍었고 대학에서도 컴퓨터과학 학위자의 10명 중 4명이 여학생이었다. 

저자는 그레이스 호턴을 인터뷰한 크로스폴리탄 기사도 인용해 여성들이 오히려 프로그래밍에 적합한 성향을 지녔다고도 강조한다.

코스포폴리탄은 프로그래밍이 식사 계획을 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여성은 선천적으로 참을성이 많고 세부적인 것까지 깊은 관심을 쏟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에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심지어 여성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소질을 타고 났다고 딱 잘라 선언했다. 코스모 폴리탄은 프로그래밍을 일컬어, "여성에게 맞는 새로운 직업군이 탄생했다. 지적의 기계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일이다. 여성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될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여성에게 딱맞는 일이라고 호퍼의 주장을 거들었다.

저자에 따르면 1984년을 기점으로 IT업계에서 여성들이 배제되는 현상은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그즈음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대거 진입했다. 그리고 급성장하던 기술 산업에서는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 두가지 현상을 조합해보면 기술 산업이 어떻게 해야할지 답이 나온다. 늘어난 일자리를 명석하고 야심찬 여성 인력으로 채우는 것이 누가 보더라도 타당했다. 하지만 기술 산업은 오히려 여성 인력을 외면하는 길을 택했다. 

이같은 상황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기 보다는 남자들이 의도적으로 연출한 결과물에 가깝고, IT이 갖는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것을 감안하면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반복해서 경고한다. 듣다보니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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