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함에 대하여

잔혹함에 대하여. 그나마 읽기 쉬웠던 철학책이다.

제목이 말해주 듯 악이 주제다. 읽고 보니 악한 사람이라는 게, 그냥 상종못할 인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나름 복잡한 것 같다. 잘못한 것과 악한 것의 차이를 구분짓는 경계도 애매할 때가 많고...악보다 잘못의 결과가 더 나쁠 때도 있는 법이다.

사람은 분하고 원통하면 잔혹한 마음을 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행동으로 옮긴 이들에 대해 우리는 종종 그들은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잔혹함의 대하여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 사람을 잔혹하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터닝포인트가 있다는 입장이다. 잔혹한 행동을 한 사람은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나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태어나지 않은 사람도 특정 상황에서 터닝포인트를 지나게 되면 언제든 잔혹해질 수 있다는 의미이지 싶다.

잔혹해지는 선을 처음에는 넘기가 힘들지만 일단 한번 넘고 나면 두번째, 세번째부터는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쉬워질뿐더러 합리화까지 하게 된다.

주변에서 종종 이런 사람들 본다. 잔혹한 행동을 해놓고 나서 별 스트레스 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소시오패스다.

물론 자라온 환경과 개인적 성향에 따라 사람마다 터닝포인트는 다를 것이다.

"폭력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을 대하는 타인들의 태도에 대해 믿음을 축소하기 보다 과장하기 쉽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믿음은 종종 사실과 크게 다르다. 폭력적인 강간범은 자신이 성적인 기술의 달인이라고 믿고, 폭력적인 아버지들은 자식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자존감은 부풀려져 있으며 약하다. 취약한 자기중심주의자는 사실 폭력적인 개인들 사이에서 매우 흔하다."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쉽게 분노하는 이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같은 상황인데도 누구는 단순히 불만을 표출하고 끝내지만 또 다른 누구는 분노한다. 분노가 쌓이고 쌓이면 증오로 발전할 때도 있다.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못했을 수도 있지만 증오는 잔혹함으로 가는 중간 기착점일 수 있다.

"분노는 한순간의 반응이다. 분노는 일정기간 유지할 수 있는 태도로 전환되기 어렵다. 혹시라도 순간적이고 격렬한 감정인 분노가 증오라는 장기간의 태도로 변화되면 그때부터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특히 증오는 과거를 봉쇄하고 정확히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증오에 빠지면 증오에 하는 대상이 누군지를 확실히 안다고 믿는다. 그리고 증오가 생겨난 책임도 그 대상에게 전가된다. 이 책임전가 증오의 원리다."

어떤 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민족이 독립 전쟁에 나섰다고 하자. 영웅적인 전사가 나타나 독립전쟁을 이끌면서 그동안 자신들을 핍박했던 나라의 국인과 민간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면 그 역시도 잔인한 사람일 수 있다. 연쇄살인범처럼 그 역시도 잔혹함으로 희열을 느끼는 성향의 소유자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핍박받는 민족편에서 앞장섰기에 그나마 잔혹한 측면이 가려졌을 수도 있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들게 했던 부분이 바로 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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