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프로그래머에게 미래는 있는가?

 
By 2012년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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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미국을 방문한 후배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IT와 관련된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후배로부터 모처럼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한국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는데, 모르고 있던 바는 아니었지만 상황은 우울했다. 평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형님이 대학에 가던 시절에 컴퓨터와 관련된 학과는 최고 인기 학과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인기가 제일 없는 학과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짜는 일은, 대학에서 정식으로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곳에 취업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취직도 잘 안 되는데 이거라도 해볼까 하고 학원 같은 곳에서 프로그래밍 3개월 속성 과정 등을 밟은 다음에 하는, 일종의 3D 업무의 하나가 되었죠. 3D 업무가 뭡니까,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3D 업무라고 하잖아요.

박봉이죠. 업무 강도는 살인적이고요.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삼성, LG, 현대 같은 대기업들이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일을 자체적으로 다 해결하고, 바깥에 있는 일감도 차지하기 때문에 중소규모의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설 땅이 없어서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위 한국에서 잘 나가는 인터넷 회사라는 곳들도 한국 시장이라는 좁은 우물을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다가 다 죽었어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미국 회사들 하고는 시장의 규모라는 측면에서 게임이 안 되는 거죠.

한국에서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배너를 만드는 기술 같은 것을 의미하는 수준이 되었죠. 멀티코어니 함수 프로그래밍이니 그런 거에 관심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컴퓨터를 제대로 공부한 똑똑한 친구들도 꿈이 은행 전산실이나 마사회 전산실 같은 곳에서 실장 노릇 하는 거예요.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는 일이 아니라 호봉이 올라가서 돈을 넉넉하게 받는 일을 꿈꾸는 거죠. 똑똑한 친구들이 키보드 두드려가면서 프로그램을 짜고 있으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봅니다. 이 친구는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나보다, 이런 말을 하는 거죠.”

이렇게 암울한 진단이 한국에서 프로그래밍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라면 너무나 심각한 상황이 아닌가? 우리나라는 천연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대신 고등교육을 받은 인력이 세계의 그 어느 나라보다 풍부하다.

이런 한국에서 소프트웨어는 참으로 궁합이 잘 맞는 미래의 산업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그러한 믿음이 허망한 착각이었음을 드러낸다. 단지 궁합 때문만이 아니다. 종이책의 공간이 점점 전자책에 의해서 잠식 되고 있는 것처럼, 세상은 빠른 속도로 디지털화 되어 가고 있다. 디지털은 소프트웨어를 의미한다.

어느 시점이 되면 소프트웨어를 자급자족 하지 못하는 나라는 마치 식량을 자급자족 하지 못하는 나라가 그런 것처럼 곤궁할 처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해외의 대규모 농산물 산업과의 경쟁 앞에서 국내의 농업이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소프트웨어 산업의 자리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농업이 영세한 노인들이 생계를 위해서 하는 일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처럼, 프로그래밍 역시 사람들이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으로 인식된다. 프로그래밍은 결코 단순노동이 아니라 재기발랄한 창의성을 요구하는 고도의 전문적 정신노동인데, 이렇게 척박한 상황에서 어떤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을 것인가?

나선형 운동을 하면서 점차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소프트웨어 산업계의 악순환 구조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프로그래밍을 수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매일 밤 야근을 하면서 일을 하고 박봉을 받도록 되어 있는 산업 구조는 엄연한 착취구조다.

프로그래머는 쉬면서 육체적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머리도 말랑말랑하게 풀어주고,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하면서 실력도 키워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은 공부를 하는 것과 비슷해서 맑은 머리로 2시간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지친 머리로 10시간 프로그램을 짜는 것보다 효율적이며 전체적인 생산성면에서도 앞선다.

매일 밤 야근을 하면서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 5시간에 할 일을 늘려서 15시간에 걸쳐서 하는 것일 뿐, 실제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에 비례해서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서로가 서로의 살을 파먹으면서 공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대신, 한국의 모든 프로그래머가 연대해서 어떤 경우에도 하루 8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면 어떨까.

8시간 이상 일을 하기를 기대하는 상사나 고용주가 불편함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최소한 프로그래머들의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고, 프로그래밍이 3D라는 인식도 개선될 것이다. 그렇게 첫 걸음을 떼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이 참으로 황당하고, 그렇게 될 리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저 너무나 답답해서 해보는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프로그래밍 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던 애자일 방법론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소프트웨어 프로젝트 관리와 관련된 상황이 점점 악순환에 빠져 들면서 중요하지도 않은 문서화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소프트웨어 프로젝트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비즈니스 요구사항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고 답답해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한 곳에 모여서 유명한 애자일 선언을 하면서 애자일 방법론이 확산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프로그래머들이 모여서 한국 프로그래머들이 빠져 있는 암울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아서 공개적으로 선언을 하면, 그것이 다른 프로그래머들에게도 전파되면서 현재의 악순환을 끊는 첫 고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이 다 마르면 고기가 숨을 쉴 수 없는 법이다. 비록 나는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한국 프로그래밍 업계의 현실을 들으면서 온 몸의 물기가 다 빠져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 흐름을 지금 바꾸지 못하면 한국은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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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UTHOR
임백준 Baekjun.Lim@gmail.com | 한빛미디어에서 『누워서 읽는 퍼즐북』(2010), 『프로그래밍은 상상이다』(2008), 『뉴욕의 프로그래머』(2007), 『소프트웨어산책』(2005), 『나는 프로그래머다』(2004), 『누워서 읽는 알고리즘』(2003), 『행복한 프로그래밍』(2003)을 출간했고, 로드북에서 『프로그래머 그 다음 이야기』(2011)를 출간했다. 현재 맨해튼의 바클리스은행에서 월스트리트 금융규제를 위한 도드-프랭크 법안에 따르는 중앙청산소 시스템을 C# 언어로 개발하고 있다. 뉴저지에서 아내,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 코드말하길

    저도 취직이 안된 것이 이 세계로 발을디디게되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는데요ㅠㅠ 한국의 상황이 틀린건 아니지만 희망도 보입니다.

    옛날이야 그렇지 요즘 제 주위에 야근 별로 안하고 근무조건도 좋은 편입니다. 점점 좋아지고 있고요. 문제는 개발을 좋아하느냐 자부심을 느끼고 있냐가 중요할듯 해요

  • 고민되게하네요말하길

    프로그래머를 꿈꾸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게 하네요 진로결정을 바꿔야하나;;

  • Roid말하길

    2002년 부터 토론되어 왔던 주제입니다.
    결론은 노무현 정권때 기술 유출 방지법이랑 전산직 파업 금지 법안 통과 된 것 보셨듯이.. 원초적으로 프로그래머 = 개발 머슴의 인식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뭐 사실.. 이렇게 막장화 된 것의 물밑 작업은 쌤쑹 및 수출 대기업의 저가격 고기술인력 사용을 위한 정부와의 오랜 유착이 원인이었고요.
    그런 제도 중에 하나가 병역특례도 포함되는 것이지요.
    사이엔지 라던가.. IT 노조라던가 반짝 목소리 올릴려고 하다가 다 묻혔고요.
    그래서 저 나름의 결론은.. 원래 동양쪽은 기술을 뛰어난 하청민이 하던 것이었고, 서양쪽은 기술이 귀족들의 놀이 문화에서 나온 것이라서 그 인식의 갭을 매꿀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로 귀결 되었습니다.
    솔직히 먹고 사는 문제와 재미와 취향에 맞는 문제는.. 따져보면 전자는 사회적 하청민이기 때문에 간절히 바라는 것이고, 후자는 귀족들의 취미 생활이었던 방향으로 보는 것이겠지엽.

    결론은 복지는 부에서 나오고, 부는 시장의 크기에서 나오니.. 시장의 논리에 따라 큰시장으로 가주는게 서로간에 왈가왈부 할 것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일부러 못가게 막아 틀어쥐는 움직임이 기술유출방지법 이지만..